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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울산 고래축제, 실제 고래를 안 부르기 위한 고민
    지역축제 비하인드 스토리 2025. 11. 16. 07:12

    🌊 1. 고래의 도시, 울산의 축제가 던진 질문

    울산 장생포는 한때 ‘고래잡이의 성지’였다. 1960~70년대만 해도 장생포항은 고래잡이 배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하루에도 몇 마리씩 대형 밍크고래, 향유고래가 해체되며 울산의 경제를 책임지는 산업 현장이었다. 하지만 국제포경위원회(IWC)의 상업적 포경 금지 조치(1986) 이후, 울산은 고래잡이 대신 ‘고래의 기억’을 관광 자원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후 열리게 된 ‘울산 고래축제’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찾는 지역 대표 행사로, 고래 퍼레이드, 해양 생태 체험, 장생포 문화마을 투어 등이 어우러진 종합 문화축제다.
    하지만 이 축제는 출발부터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다. “고래가 없는 고래축제를 과연 진짜로 할 수 있을까?” 혹은, “고래를 부르지 않으면서도 고래를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 2. 상징으로 남은 고래, 실물 없는 퍼레이드의 묘수

    울산 고래축제의 가장 큰 고민은 ‘고래 없는 고래 퍼레이드’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였다. 축제 초기에는 바닷가에 떠다니는 고래 조형물이나, 작은 고래 쇼를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도 시도되었지만, 환경단체의 반발과 생명권 논란이 일면서 실제 고래나 해양동물의 활용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그 대신 축제 기획자들은 ‘상징적인 고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길이 30미터에 달하는 고래 모양의 행진 풍선, 드론 조명으로 만들어진 하늘의 고래, 아이들이 직접 페인팅한 수천 개의 고래 조각들이 장생포 골목에 걸렸다. 이 모든 요소는 고래의 실제 존재 없이도 상징성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축제의 메시지는 점점 변해갔다. "우리가 기억하는 고래는, 더 이상 바다 위에서 쇼를 하지 않아도 된다. 고래는 자유롭게 헤엄칠 때 가장 고래답다." 이 철학은 ‘존재를 소비하지 않고 존재를 기념하는 방식’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울산 고래축제, 실제 고래를 안 부르기 위한 고민

    🧪 3. 체험과 전시, 고래를 ‘배우는’ 공간의 진화

    울산 고래축제의 또 다른 축 중심은 교육과 체험을 중심으로 한 전시 콘텐츠다.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에는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박물관, 고래바다여행선 등 고래를 직접 잡거나 보지 않아도 고래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풍성하게 마련되어 있다. 특히 고래생태체험관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양 생물 다양성, 포경의 역사, 바다의 생태계 위기 등을 게임, 영상, 실물 모형으로 전달하며 ‘배움의 장’으로 축제를 확장시킨다. 단순한 재미나 관람을 넘어, “고래를 좋아한다면, 고래를 자유롭게 두자”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또한, 장생포항에서는 축제 기간 중 실제 고래를 쫓는 ‘관찰’ 대신 AR/VR 기술을 통해 바닷속을 체험하거나 과거 포경선의 항로를 따라가는 가상여행이 진행된다. 기술을 활용해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도 생생한 체험을 제공하는 이 방식은 현대적 축제 운영의 모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 4. 지역 정체성과 생명권 사이의 균형

    울산이 가진 고래 문화는 단지 ‘축제 테마’가 아니라, 지역의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래는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울산은 어떤 가치를 먼저 둘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왔다. 초창기엔 고래 박물관 내부에 포경 현장을 재현한 조형물이 논란이 되기도 했고, 일부 관광 상품에서 고래고기 시식 코스가 포함되어 환경 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콘텐츠가 비폭력적, 비소비적인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축제 주최 측은 “고래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고래 문화를 존중하는 길”이라며 지역성과 윤리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5. 고래가 없는 고래축제, 더 큰 감동의 가능성

    이제 울산 고래축제는 ‘고래가 보이지 않아도’ 성공한 축제로 평가받는다. 이는 고래를 보는 존재에서, 공존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 덕분이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은 화려한 쇼보다, 아이의 손을 잡고 VR로 바닷속을 여행하며 “이 고래는 지금도 바다 어딘가에 살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이제 고래축제는 고래를 무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고래가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있도록 조용히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울산이 선택한 이 조용한 방식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고래 없이 고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고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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