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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 뒤에 숨은 ‘탈 장인’ 이야기지역축제 비하인드 스토리 2025. 4. 21. 23:15
🎭 1. 세계인을 웃게 하는 탈춤, 그 이면의 이야기
매년 가을이면 경북 안동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독특한 축제가 열린다. 바로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민속극인 탈춤을 세계적인 공연예술로 끌어올린 이 축제는 무대 위 화려한 춤과 흥겨운 장단, 그리고 다양하고 독특한 ‘탈’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마당놀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웃고 즐기며 탈을 쓴 채 자유롭게 움직이는 공연자들과 소통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탈춤의 중심엔,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묵묵히 탈을 깎고 채색하는 ‘탈 장인’들이 있다.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하나의 탈은 단순한 공연 소품이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온 예술과 철학, 그리고 공동체의 정신이 담긴 상징이다.
🔨 2. 나무를 깎아 혼을 불어넣다: 탈 제작의 시작
전통 탈의 제작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조각 기술을 넘어선다. 안동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재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인데, 이는 무게가 가볍고 습기에 강해 오래 착용해도 편안하기 때문이다. 탈 장인들은 수분 조절이 끝난 나무 원목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수차례 형태를 잡은 뒤 인물의 성격에 맞는 얼굴 표정을 조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한 얼굴 복사가 아닌, ‘역할의 감정’을 담는 것이다. 양반의 고상함, 선비의 날카로움, 각시의 수줍음, 할미의 주름진 삶까지—탈 하나하나엔 인간 군상의 풍경이 녹아든다. 그들은 기계 없이 정으로 찍고 망치로 다듬으며, 마치 조용한 기도처럼 나무 속에 생명을 새겨 넣는다.
🎨 3. 색과 생명을 입히는 작업: 장인의 붓끝
조각이 끝난 탈은 ‘무색’의 상태로는 절대 완성이라 할 수 없다. 탈의 진짜 생명은 그 위에 올려지는 색채와 무늬에 있다. 안동 탈의 경우, 붉은색과 검정, 흰색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각각의 색은 캐릭터의 성격, 계급, 감정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양반 탈은 흰색과 주홍빛이 어우러져 고결함과 자만을 드러내고, 노파 탈은 검은 주름과 핏줄 묘사를 통해 세월의 무게를 표현한다. 장인들은 천연 안료와 전통 기법을 사용해 색을 입히며, 눈동자 하나조차 ‘살아있는 듯한 시선’을 가지도록 공들인다. 특히 탈의 입 모양은 매우 중요하다. 관객의 위치에 따라 웃는 듯도 하고, 우는 듯도 하게 보이는 입은 탈춤의 상징성과 감정 전달의 핵심이 된다. 장인의 손끝에서 그저 나무에 불과하던 조각이, 마침내 표정을 가진 ‘인물’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 4. 사라질 뻔한 기술, 이어가는 사람들
한때 탈 제작은 사양길에 들어선 전통 예술로 여겨지며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서양 연극, 현대 무용의 부상과 함께 탈춤과 탈의 수요는 급감했고, 장인들의 활동 무대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나 안동시와 지역 문화재단, 그리고 일부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탈 제작은 다시 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현재 안동에는 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탈 제작장이 있으며, 여기에서 장인들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몇몇 탈 장인들은 전통 제작 방식과 현대 재료를 융합해 현대 탈 디자인으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단순히 옛것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탈춤 문화를 창조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탈 제작 시연도 함께 진행되어 관람객들에게 탈의 탄생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 5. 탈은 가면이 아니다: 한국의 얼굴, 세계로 나아가다
‘탈’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mask’로 번역되지만, 실제로 전통 탈은 단순한 가면이 아니다. 그것은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 공동체 의식과 해학을 담은 문화적 도구이자 사회적 메시지였다. 양반을 희화화하고, 무당의 입을 빌려 신을 모시며, 평민의 삶을 노래하는 이 모든 탈춤의 메시지는 탈 장인의 손에서 출발한다. 안동 국제탈춤페스티벌은 이제 세계적인 공연예술 축제로 성장했고, 각국의 전통 가면극과의 교류 속에서 탈 장인들의 작품은 ‘한국의 얼굴’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조명받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엔, 여전히 조용한 공방에서 나무를 깎고 붓을 드는 한 사람, 탈 장인이 있다. 축제가 끝나고 무대가 사라진 뒤에도, 그들의 손은 다음 해의 탈을 위해 다시 나무를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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